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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겨레 '중사 박준기 사건' - 법영상분석연구소 관련 기사
등록일 2015-05-06
 

 

군은 박준기씨가 병원 10층의 반개방형 창문을 통해 투신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겨레 취재 결과, 이 창문의 최대 열린 폭은 21㎝ 정도로 확인됐다. 2008년 군은 30㎝ 이상 열리는 창문이라고 발표했다. 사진 군 수사자료


헌병에 구타당해 정신잃었다는데 군은 자살기도 단정

[토요판] 뉴스분석, 왜?
‘전직 중사’ 박준기의 투쟁(하)
▶ ‘중사 박준기 사건’을 지난주에 이어 보도합니다. <한겨레>는 군 수사 내용을 검증했습니다. 오류가 다량 발견되었습니다. 군은 1994년 최초 수사 이후인 2002년, 2006년, 2008년 재조사를 벌였지만 오류는 수정되지 않았습니다. 재조사조차 형식적이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이번주 “민간이 참여하는 재조사를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21년 전 사건의 진실은 이제 제대로 밝혀질까요.
“제가 몇년 전 기억상실증이 왔어요. 아무것도 기억 안 나니까 전화하지 마세요.” 사내는 기자의 전화를 무뚝뚝하게 끊었다. 수차례 다시 걸었지만 응답이 없었다. 전화를 받은 이는 전 헌병 수사관 김용화(가명)씨다. 그는 1998년 전역했고 현재 민간인이다. 김씨는 1994년 12월 육군 제2군단사령부에 근무하던 박준기(45·당시 24살)씨를 폭행한 사람으로 지목받고 있다.(<한겨레> 18일치 11면 참조)
박씨가 폭행당했다는 그날 헌병 김씨와 함께 근무를 섰던 또 다른 헌병 손일국(가명)씨도 <한겨레>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폭행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은 말이 없고, 맞았다는 사람의 말만 남았다. 누구의 말이 사실일까. 폭행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박준기씨 주장의 신빙성을 검증해 볼 단서는 군의 수사 기록뿐이다.


사건의 발단은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준기씨는 1994년 12월17일 밤 강원도 춘천 시내에서 교통사고를 내어 가벼운 부상을 입고 차로 10여분 거리인 춘천 한림대 성심병원으로 왔다. 그런데 박씨는 18일 0시30분께 병원 3층 옥상 콘크리트 바닥에서 피 흘리며 쓰러진 채로 병원의 수위 홍아무개씨에 의해 발견됐다. 군은 박씨가 교통사고의 자책감으로 병원 10층에서 투신해 자살 기도를 했다고 보고 수사를 종결했다. 박씨는 당시 기억을 잃었고 군의 수사 결과를 받아들였다.
사고 2년 뒤부터 박씨는 조금씩 기억을 회복했다. 헌병 김용화씨가 자신을 발로 차 계단을 굴렀던 기억이 떠올랐다. 박씨가 입은 상처는 계단을 구른 것치고는 중상이었지만 어쨌든 폭행의 단서를 기억해낸 것이다. 박씨는 자신이 자살을 기도할 이유가 없다고 뒤늦게 주장한다. 반면 군은 박준기씨의 요청에 따라 2002년(1군단 헌병대), 2006년(육군 수사단), 2008년(군 검찰단), 2010년(육군 법무실) 진행한 재조사에서 ‘헌병 수사관의 폭행 혐의는 없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20m 이상에서 추락했다고 보기엔 상처 미약
‘박준기 사건’의 열쇠를 풀 중요한 단서는 그가 떨어진 높이, 떨어진 창문의 폭, 방충망의 상태, 그리고 교통사고 시각 등이다. 이 네가지 부분에서 수사의 오류가 없어야 박씨의 부상이 자살 기도에 의한 것이라는 군의 주장에 설득력이 실린다. 취재 결과 군의 수사 결과에서 오류가 발견됐다.
먼저 떨어진 높이. 2군단 헌병은 1994년 초동 조사 때 박준기씨가 떨어진 높이를 15m라고 추정했다. 2007년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가 부실 수사를 지적하며 재조사를 권한 뒤 군이 행한 2008년 조사 때도 15m 높이는 유지됐다.
그러나 <한겨레>가 직접 측정한 결과 약 21m(창문으로부터 6.5층 높이)로 확인됐다. 춘천 한림대 성심병원은 한 층당 19.5㎝의 벽돌이 17개씩 사용됐다. 이를 이용해 단순 계산해 보면, 박씨가 추락한 높이는 21.54m(19.5×17×6.5)가 나온다. 군의 높이 측정 오류는 6m에 이른다. 추락 시 부상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는 수치다.
권익위의 조사 내용을 보면, 1994년 12월 당시 박씨를 직접 치료한 춘천 한림대 성심병원 응급실 당직 의사 정아무개씨는 “상해 부위가 주로 하체에 집중되어 있고 (중략) 박준기의 상해는 22m 높이에서 추락한 정도로 보기 어렵고, 낮은 층에서 추락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술했다. 20m 이상 높이에서 추락했다고 보기에는 박씨의 상처가 미약해 군이 15m 높이를 고수한 것 아닌지 박씨는 의심한다.
박준기씨가 투신자살을 기도했다고 하는 병원 10층 성당 반개방형 창문(창문 하단 손잡이를 잡아당기거나 밀어 살짝 열리도록 고안된 창문)의 열린 폭도 1994년 당시 군의 조사에서는 21㎝였다가 2006년 조사 때는 24㎝로 늘어나고 2008년 재조사 때는 30㎝까지 늘어난다


2006년(육군 수사단)과 2008년(군 검찰단) 군은 각각 한림대 성심병원 총무과 차장 최아무개(현재 퇴직)씨의 진술을 근거로 했다. 같은 최씨의 진술이 왜 24㎝에서 30㎝로 변경되는지 군은 아무런 설명이 없다. 2008년 군은 최씨의 설명을 근거로 “사고 당시 개방폭이 더 넓어 사람이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는 구조로 확인됐다”고만 설명했다. 21㎝ 폭이라면 몸집이 큰 박씨가 빠져나가는 게 불가능하거나 창틀의 파손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논리로 보인다.


병원 개원 당시부터 창틀 관리를 맡아온 영선실(시설관리)의 김아무개(61)씨는 그러나 지난 1월 <한겨레>와 만나 군의 주장을 부인했다. 김씨는 “창틀은 내 손으로 다 제작했다. 1994년 12월 이전 병실에서 환자들이 바깥으로 떨어지는 사고가 있어 창문 열리는 폭을 12㎝로 설정해두었다. 일반 사무실 창만 21㎝까지 열리도록 했다. 창틀 구조상 21㎝ 정도가 최대 열리는 폭이고 물리적으로 30㎝는 불가능하다. (군이 내세운) 당시 총무과 차장 최씨가 잘 모르고 말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군 조사에 응한 최씨에게 해명을 들으려 했지만 그는 인터뷰를 거절했다.
<한겨레>는 군이 1994년 당시 찍은 병원 창틀 사진을 법영상분석연구소(소장 황민구)에 보내 분석을 의뢰했다. 연구소는 2차원 사진을 3차원 영상으로 복원해 창문의 열린 폭이 21㎝ 내외라고 밝혔다. 2006년(24㎝)과 2008년(30㎝) 군의 재조사 결과와 배치되는 수치다.
1994년 사건 당시 10층 성당 창문 방충망이 찢어져 있었다고 진술한 수위장 홍아무개씨의 진술도 신빙성이 의심된다. 홍씨는 2007년 권익위 조사관에게 “방충망은 찢겨진 바 없고 밖으로 불룩하게 튀어나온 상태였다”고 진술해 기존 진술을 뒤집었다. 이는 박씨의 친형 박호준(가명)씨가 “현장 방문 때 방충망이 찢겨져 있지 않은 것을 봤다”고 한 증언과 일치한다. 방충망이 찢어져 있지 않았다면 창문으로의 투신은 불가능하다. 홍씨는 최근 <한겨레>와 만났지만 “군에 진술한 내용이 맞다. 다른 얘기는 더 하고 싶지 않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이하생략)

춘천 군산/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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